바람꽃 소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들에게 ‘바람꽃’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당시 바람꽃은 200여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문화예술동아리로, 전주 소재 고등학교 곳곳에서 바람꽃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바람꽃이 처음 시작될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박수학이다. 그는 앞서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묵묵히 뒤에서 후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바람꽃 회원들이 모여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하고, 매월 발행되는 바람꽃 소식지가 꾸준히 배포될 수 있도록 복사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의 후원 덕분에 바람꽃은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예술과 문화의 장을 제공할 수 있었다.
바람꽃 회원들은 학교 담장을 넘어 미술, 음악, 문학, 사진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공유하며 소통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은 고교생들의 대외 활동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기였기에, 바람꽃은 청소년들에게 자유로운 창작의 장이자 문화적 해방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바람꽃은 한때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참교육 운동을 주창하던 선생님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해직되던 격변의 시기에, 바람꽃 회원들도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꽃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바람꽃의 청춘이었던 이들은 이제 50대가 되었다. 머나먼 추억 속에 자리했던 바람꽃은 다시금 모이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은 새로운 바람꽃의 창작 서식지를 마련해 전시회를 열고 ‘바람꽃 문화예술관’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열었던 ‘세모전(歲暮展)’이 이제는 설 명절을 전후하여 이어지고 있으며, 바람꽃의 예술적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과거의 바람꽃이 고등학생들의 문화예술 동아리였다면, 오늘날의 바람꽃은 더욱 열린 공동체로 확장되었다. 과거 회원 여부와 관계없이, 그들의 자녀와 가족, 지인들이 함께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바람꽃은 단순한 동아리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예술과 연대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여전히 부드럽게, 그러나 강인하게 불고 있다.